외환시장에서의 거래와 결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은행 간 통신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과거에 모든 외국환은행은 1920년부터 써오던 케이블 메시지(cable transfers)를 통해 외환의 지급과 수취를 해왔다. 이 방법은 인간의 수작업에 의존하므로 실수가 잦았고, 외환 거래량이 증가함에 따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었다. 만일 거래 및 결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사슬처럼 연계된 외환시장 거래자들 사이에 연쇄적인 부도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엄청난 혼란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체계위험(systemic risk)을 방지하고자 국제은행 간에는 보다 효율적인 국제통신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1973년 5월 외국환은행 간 무역 관련 업무와 자금 결제업무 등을 처리하기 위해 유럽 은행들을 중심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설치된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national Financial Telecommunication)이다. 비영리단체인 SWIFT는 각국의 데이터 집중센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별 참여 은행들의 컴퓨터란 말기는 각국의 데이터 집중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SWIFT에 가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992년 3월부터 거의 모든 국내은행 및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외환의 결제계좌는 노스트로 계좌(nostro account or clearing account)라 불리며, 모든 외국환은행은 각 통화가 속하는 국가에 외화를 수취 혹은 지급할 목적으로 개설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는 은행이 일본 엔JPY)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도쿄에 있는 일본 은행이나 외국은행의 지점에 일종의 계좌를 설치하게 된다. 또한 미국 달러를 수수하기 위해서는 뉴욕에 있는 미국 은행 혹은 뉴욕에 있는 외국은행 지점에다 계좌를 개설하면 된다.
그런데 현재 세계 외환거래는 대부분 달러 위주로 되어 있고 달러화가 아닌 통화들 간의 거래도 많은 경우 달러화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외환거래 결제는 미국의 결제제도를 거치게 된다. 미국의 은행 간 결제는 크게 CHIPS(Clearing House Interbank Payments System)와 Fed-Wire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환 및 금융거래의 대부분은 CHIPS를 통해 결제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1999년부터 EU 회원국 금융기관 간의 유로화 지급 결제를 위해 범유럽 실시간 통화 결제 시스템인 TARGET(Trans-European Automated Real-Time Gross Settlement Express Transfer)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1995년 20개 국제은행이 외환결제위험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G-20을 결성해 연구한 결과 1997년 영국법에 따라 유한지주회사인 CLSS(Continuous Linked Settlement Services)를 설립했다. 이후 1999년 미국법에 따라 규제되고, 뉴욕에 위치한 CLSB(CLS Bank International)를 설립했다. CLSB의 외환 동시 결제(payment versus payment) 시스템은 각 결제 회원은행과 15개 결제 통화국과 중앙은행 및 CLSB의 결제 시스템을 SWIFT 망으로 연결하고, 각 결제 회원은행의 지급통화와 수취통화를 지속해서 연계하여 외환거래를 결제한다. 현재 전 세계 58개 결제 회원은행 및 191개 제삼자 고객은행 등이 동 시스템에 참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 외환거래의 55%, 은행 간 거래의 3/4 이상이 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이 2004년 12월 결제 회원 자격을 취득했다. 국내은행들이 외환 동시 결제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CLSB의 결제 회원인 국민은행 또는 외환은행을 결제은행으로 지정하고 외환거래에 따른 결제를 동 은행에 위탁하여 처리하면 된다.
이처럼 외환시장에서 은행들이 CLSB의 외환 동시 결제서비스를 이용하게 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외환거래에 따른 수취통화와 지급통화의 결제가 시차 없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되어 외환 결제에 따른 원본위험(principal risk)이 원천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기존에는 국가 간 시차로 은행 결제 시간이 달라 외환 동시 결제가 불가능했으며, 이에 따라 매도통화 지급과 매입통화 수취 간 외환결제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CLSB를 통해 외환 결제가 이뤄지게 되면서 시차에 상관없이 매도통화와 매입통화 간 동시 결제가 가능해졌다.
또한 CLSB는 결제 회원들이 제출한 각 외환거래 명세를 결제 회원별, 결제일자별 합산한 후 수취분과 지급분을 상계해 차액만을 결제토록 하기 때문에 외환거래를 건별로 결제하는 것보다 필요한 국내 통화 및 외화자금이 대폭 절감된다. 외환거래에 따르는 결제업무 처리 절차에 있어서도 CLSB의 외환 동시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면 결제업무의 전 과정이 자동으로 일괄처리 (straight-through processing) 되기 때문에 은행의 외환 결제 업무가 대폭 축소됨은 물론 수작업에 따른 입력 오류 등 운영위험도 크게 감소할 수 있다.
한편 국내적으로도, 이미 외환 결제방식의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CLSB의외환동시결제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결제통화로 지정된 원화의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이 제고됨은 물론 국내 외환시장의 선진화 및 대외 신뢰도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국제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외환결제위험에 노출되는 전통적인 환거래은행을 통한 결제방식을 회피하거나 거래조건을 불리하게 적용하게 될 것이므로, 외환 동시 결제에 참가하지 않는 통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거래에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정보, 통신 및 결제망을 통해 외환시장은 시장조성 자(market maker)간 정보교환과 가격경쟁이 치열해 거의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편이며, 효율적인 시장(efficient market)이라고 할 수 있다.
Box 3-1 Bankhaus Herstatt의 몰락과 외환결제위험
1974년 6월 26일 독일 연방은행감독청은 총자산 8억 달러의 독일 민영 은행 BankhausHerstatt의 폐쇄를 명령했다. 서류상의 조작에 의해 Bankhaus Herstatt의 손실 규모가 즉시 그
1. 외환 결제제도에서 제기되는 원본위험은 Herstatt 위험'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국가 지급결제제도의 운영시간이 달라 거래 쌍방이 동일한 시점에 교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자국 제도의 운영시간을 연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행은 BOJ-NET의 운영시간을 연장했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Fed-wire의 개시 시점을 1997년부터 8시간 앞당겨 0시 30분으로 하고 있다.
러나 지는 않았으나 외환 부문과 기타부문의 손실이 4억 5천만 달러로 은행자본의 5배 정도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 은행의 파산은 전후 독일의 은행파산 중 가장 큰 규모였다.
Bankhaus Herstatt의 몰락은 독일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소규모은행의 거액 예금자들이 자금을 인출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소규모 은행이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적으로는 현물 외환시장에서의 결제위험의 심각성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다. 현물 외환시장에서는 계약이 체결된 2일 후에 결제하는 것이 관행이므로 Bankhaus Herstatt는 1974년 6월 24일에 뉴욕에 주재한 은행들로부터 구매한 독일 마르크와의 청산 대금을 6월 26일 뉴욕의 업무종료 시점에 달러로 지급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파산이 선고된 시간은 독일시간으로 6월 26일 오후 4시로 독일에서는 영업 종료 시점이지만 뉴욕에서는 오전 10시로 한참 외환이 거래되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에 따라 Bankhaus Herstatt와 거래하던 은행들은 Bankhaus Herstatt의 뉴욕 코레스 은행으로부터 달러화를 지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뉴욕의 단기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특히 소형은행들이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어떤 은행이Bankhaus Herstatt에 돈을 빌려준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은행의 규모가 작을수록 재무적 안전성이 위협을 받을 위험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시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자국의 중앙은행으로부터 긴급 달러 지원이 빈약한 것으로 알려졌던 일본과 이탈리아 은행들이 자금조달에 심한 애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일본은행은 1974년 하반기 동안 유럽 은행에서 자금조달의 길이 막힌 소규모 일본 은행들에 대해 자금을 공급해야 했으며, 장기적으로Bankhaus Herstatt의 파산은 현물 외환거래의 위험에 대한 재평가를 초래했다.
Bankhaus Herstatt의 파산을 계기로 국제적으로도 1975년에 바젤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해지게 되었다.